일상흔적
(05-01-27) 조승우와 말아톤
정미자씨
2005. 1.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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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조승우와 김미숙 주연의 말아톤.
백만불짜리 다리와 끝내주는 몸매를 가진 스무 살 청년 초원은 달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나 자폐증을 갖고 있는 장애아. 초코파이와 자장면, 그리고 사바티나 초원의 얼룩말을 좋아하는 초원은 지능이 5살짜리 수준밖에 안돼지만, 달릴 때만은 남들과 똑같다. 아들에게 좋아하는 것 하나 정도는 만들어주고 싶었던 엄마 경숙은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한 경력이 있는 코치 정욱에게 초원의 훈련을 부탁시키고, 처음에는 그런 초원이 귀찮기만 했던 정욱도 어느새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간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라는 서브 쓰리(3시간안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훈련하는 초원과 정욱. 하지만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정욱이 도통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경숙은 어느날 정욱과 말다툼을 하게 되고,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라톤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초원은 혼자서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러 가고, 마침내 서브 쓰리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관객의 어설픈 동정심에 호소하기보다는, 담백하고 깔끔하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청년의 삶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장 가슴에 남았던 장면은, 얼룩말을 좋아하는 초원이가 어느 아가씨가 입은 얼룩무늬 치마를 만져보다가 아가씨의 애인에게 치한으로 몰려 맞는 장면이었다. 엄마 경숙이 초원을 때리는 청년과 실갱이를 벌이자 초원은 '우리 아이는 장애를 가졌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외치는데...엄마가 입에 달고 살았을 그 말이 초원의 입을 통해 나오니 어찌나 가슴이 짠하던지....
조승우와 김미숙, 그리고 조연으로 나오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또한 일품이다. 조승우가 나왔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못 본 게 천추의 한이다. 마지막으로, 5살짜리 지능을 가진 순수한 청년 초원이의 수영복 입은 몸매와 런닝복을 입은 늘씬한 다리에 침을 질질 흘린 나는 진정한 변태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