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씨네

심청||황석영||문학동네||2003.12.03||8800|| 본문

책갈피/소설

심청||황석영||문학동네||2003.12.03||8800||

정미자씨 2004. 2. 11. 15:58


'성묘사 한번 원없이 해봤어요.'라는 작가 황석영의 말에 덥썩 산 책이다. 물론 황석영이라는 이름값도 한 몫했지만....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느낌은 '글쎄.....올씨다'이다.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찬양 일색의 신문서평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고 단 2권짜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책장을 덮고 싶은 지루함과 싸워야 했다.

소설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판 심청전의 심청을 모티프로 삼고 있긴 하지만 정작 소설 속의 심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효녀 심청과는 전혀 다르다. 같은 점이 있다면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상인에게 팔렸다는 것 정도. 소설 속의 심청은 인당수에 빠지는 시늉만 한 후 중국의 부호 첸 노인의 회춘을 돕기 위한 첩실로 팔려간다. 그 후 청은 몸을 팔며 살아야 하는 운명에 순응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중국, 대만, 싱가폴, 일본 등 다양한 터전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렌화, 로터스, 렌카. 그녀가 가지게 되는 이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은 혼란하고 어려웠던 시기, 억척스럽게 살아야했던 우리네 여인들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래도 그 뿐이다.

소설 속의 사건들과 그녀의 행동들은 뭔가 모르게 개연성이 떨어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왜 그녀의 남편 동유는 어느 한 순간 종교에 귀의하여 그녀를 찾지 않게 되는지, 그녀는 싱가폴에서 영국정부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왜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는지....
상권에서 그려지는 즉물화된 청이와 하권에서의 배포 있고 넉넉한 관음보살 이미지의 청이는 동일인물로 인식하기엔 그 괴리감이 크다는 어느 리뷰어의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황석영이라는 필자가 가지는 아우라가 너무 커서일까? 왠지 모르게 심청은 황석영의 전작들에 비해 2%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