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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위화||푸른숲||1997.06.20||850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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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위화||푸른숲||1997.06.20||8500||

정미자씨 2004. 1. 28. 00:12


내가 처음 읽은 위화의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였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야.'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ㅋㅋㅋ... 제목 그대로 소설은 허삼관이라는 인간이 피를 파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5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가족을 위해 한평생 피를 팔면서 살아가는 주인공 허삼관의 고단한 인생역정은 나를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울렸다. 킥킥거리며 웃다가도 그 밑에 숨겨진 비극적인 사건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곧 희희덕거리기며 웃고....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뒤섞는 작가의 치밀한 서사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살아간다는 것' 역시 '허삼관 매혈기'처럼 한 노인의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소설은 중국혁명과 대장정, 문화혁명으로 어이지는 역사의 격동 속에서 개인들의 삶이 어떻게 상처받고 파괴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아주 감독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복귀는 지주집안 출신이나 젊은 시절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다. 이를 시작으로 불행이라는 넘은 복귀 옆을 떠나지 않고 살만하다 싶으면 찾아와 그를 괴롭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맘잡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 아내 가진은 만삭의 몸으로 장인의 손에 이끌려 친정으로 끌려간다. 친정에서 몸을 푼 아내가 아들 유경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나 싶더니 이번에는 복귀가 전쟁에 징용된다. 겨우 전쟁터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요, 딸 유화는 열병으로 농아가 되어 있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말은 바로 복귀를 위해 생긴 말이 아닐까 싶게 이후로도 고난은 끊임없이 그의 삶을 덮친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로 가족들은 하나둘 죽고(예를 들면 아들은 수혈을 너무 많이 해서 죽고, 사위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으며, 외손자는 콩을 너무 많이 먹어 죽는다-_-;;;) 가난과 굶주림은 항상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고난이란 인내할 만큼 주어진다'고 했던가. 복귀는 보는 사람이 속터질 만큼의 '담담함'과 '인내심'으로 삶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며 닥쳐온 시련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간다.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살아간다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위화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이 고난을 감수하는 능력과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써나갔다. 글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은 가족을 모두 저세승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복귀가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붙인 늙은 소와 함께 밭을 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복귀가 소에게 건낸 다음과 같은 말에 나는 울컥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오늘 유경이와 이희는 한 묘를 갈았고, 가진과 봉하는 그러니까 일곱여덟 분전, 고근이는 아직 어려서 반 묘를 갈았단다. 너는, 네가 얼마를 갈았는지는 내 말하지 않으마. 그것을 입밖에 내면 내가 너를 창피스럽게 만든다고 여길테니 내 구태여 밝히지 않은 것이란다. 돌려 말한다면 너는 나이가 많지 않느냐, 그런데도 이처럼 밭을 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의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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