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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15~20) 캄보디아 ② 앙코르톰_남문 본문

일상탈출/2005신혼여행

(05-04-15~20) 캄보디아 ② 앙코르톰_남문

정미자씨 2005. 5. 7. 18:43
캄보디아하면 떠오르는 것은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 200여만명이 끔찍하게 학살된 킬링필드가 하늘이 캄보디아에 내린 저주라면, 앙코르와트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자, 현재 캄보디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는 국기에 앙코르와트를 새겨넣을만큼 앙코르와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현재 캄보디아가 벌어들이는 외화의 대부분이 앙코르와트 관광수입일 정도로 앙코르와트는 자부심이자 그들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 국기



사실 캄보디아 씨엠립에는 앙코르와트 외에도 무려 1000여개 정도의 사원이 흩어져 있다. 사실 앙코르 와트는 수많은 사원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가장 아름답고 위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와트를 연상하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 전경



앙코르 유적지를 만든 앙코르 왕국은 서기 9세기에서 15세기에 세워졌다. 당시 앙코르 유적지 일대의 인구는 무려 1백만명. 파리나 런던이 10만~20만명에 불과했다니 얼마나 그들의 문화가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태국 남부와 라오스, 베트남 일부까지 진출했던 크메르인들은 붉은 빛이 도는 홍토로 기초를 다진 뒤 사암을 깎아 피라미드형 사원을 올리고 왕궁을 만들었다.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벽돌을 정교하게 쌓았고, 벽마다 신화와 역사를 새겼다.

그러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앙코르 왕국은 샴(태국), 베트남 등 주변 국가들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서서의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인구 100만명을 자랑하던 번화한 수도 앙코르와 화려한 유적들은 버려지고 폐허로 변한 채 울창한 밀림 속에 파묻히고 만다.

이후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앙코르와트는 위용찬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그러나 사원을 들여다보면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침략전쟁과 도굴, 복원 실패 때문이다. 14세기 크메르 왕국을 침범한 태국인들은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신상의 머리와 사자상의 꼬리를 잘라버렸고, 현대에 와서는 일본인들이 사원을 복원한다며 무작정 해체했다가 조립을 잘못 하는 바람에 원형을 훼손, 비가 줄줄 샌다. 프랑스인들은 어이없게도 앙코르와트 사원 천장에 시멘트를 발랐다. 지금도 일본과 독일 등 각국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지만 크메르인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유적지는 현대인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세월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앙코르 유적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이쯤 해두고..오늘 방문한 앙코르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앙코르톰은 자야바르만 7세가 지은 도읍지이다. '바르만'은 왕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 왕 이름 태종, 태조 처럼 '종'자나 '조'자가 붙는 것처럼 왕이름 뒤에 붙는 말이다. 우리나라 식으로 쉽게 말하면 자야왕 7세인 것이다. 또 앙코르란 '도읍지' 톰은 '거대하다' 라는 뜻으로 '앙코르톰'이란 '거대한도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거대했을까. 앙코르톰은 한 변의 길이가 3km인 정사각형 구조를 취하며 내부는 정확하게 4등분하여 그 정 중앙에 바이욘 신전이 있다.



이 구조는 앙코르의 신전에서 흔히 보는 퀸퀑스(Quincunx) 스타일로서 사방에 4개의 대륙을 의미하는 4개의 탑과  중앙에 메루산을 놓은 형상을 재현한 것으로 4구역은 4개의 세상이며 바이욘은 메루산을 형상화한 배치도이다.

앙코르톰의 약 45만평의 부지 중 절반은 왕궁과 신전이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에 거주 가능한 사람은 왕족, 귀족, 승려들 그리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하인들뿐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성문밖에 거주했다. 최전성기에 앙코르톰 내의 인구는 약 10만명에 이르렀으며 도읍지를 둘러싸고 거주하던 도시주민 수는 100만명에 달하여 당시 세계 어느 도시의 인구수와 비교해도 최고를 뽐냈다고 한다.  

앙코르톰에는 총 5개의 문이 있다. 동서남북에 한 개씩, 그리고 동쪽에 '승리의 문'이라 하여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장수와 병사들이 들어오는 문이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남문을 통해 앙코르톰에 입장하게 된다.

왼편에는 신, 오른편에는 악마들이 늘어서있고 그 끝에는 고푸라 탑문이 있다. 고푸라는 성곽의 중앙부를 확대,또는 돌출시켜 입구를 만든 형태를 말한다.  





일곱개의 머리를 펼쳐 들고 있는 신비의 뱀 '나가'. 사원의 난간은 대개 '나가'로 조각되어 있는데, 사원의 어느 곳에 앉아도 상관 없지만 '나가'위에는 앉으면 안된다고 한다.





뱀의 허리를 끌어 안고 늘어서 있는 54개의 석상. 선한 얼굴이 신 임을 알게 한다.







표면이 매끈한 것은 최근에 들어 복원한 것이다. 침략과 수탈로 인해 대부분의 석상 머리는 파괴되거나 사라졌다.




54명의 신들 맞은편에는 54명의 악마가 도열해있다. 신과 악마가 나란히 서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보시다시피 저 좁은 문을 통과하는 버스가 아시아 버스 뿐이다. 아시아 버스도 아주 간신히 통과하기 때문에 능숙한 운전사가 필수라고.



고푸라탑문에 가까이 가자 거대한 얼굴이 보였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바로 바로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영웅으로, 그는 참족(베트남)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직계가 아님에도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성문을 들어서기전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일행들.




쭉 이어진 성벽. 정확히 정사각형인 앙코르톰의 한 변의 성벽은 3km. 성벽은 철분을 다량 함유하여 금강석처럼 단단한 붉은 라테라이트 벽돌로 되어 있으며 그 높이는 자그만치 8m 이른다.  



예전에는 성벽 밖으로 넓이 100m의 해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메말라 있다.



성문벽에 새겨진 인드라의 조각상. 하늘의 제왕 인드라 신 위에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상이 얹혀져 있는 셈이니, 자신을 '관세음보살'이라고 칭하며 자신을 신격화한 자야바르만 7세 답다.



다른 각도에서 좀 더 선명하게...



남문을 들어서면 안쪽에도 똑같은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은 코끼리 코 3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반면 인드라의 머리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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