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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15~20) 캄보디아 ⑧ 톤레삽호수 본문

일상탈출/2005신혼여행

(05-04-15~20) 캄보디아 ⑧ 톤레삽호수

정미자씨 2005. 5. 17. 19:18
캄보디아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오전에 우선 들른 곳은 웨스트 바라이. 바라이(Baray)란 크메르 언어로 '저수지'라는 뜻, 따라서 웨스트 바라이는 서쪽 저수지이다.

우기 때에는 인공저수지 안쪽의 인공섬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면 신전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건기라서 배를 타고 접근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저수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왕과 귀족들의 피서지로도 애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도 씨엠립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가운데 나무가 있는 부분이 인공섬이고 그 주변은 건기라서 저수지 아래의 땅이 드러난 부분이다. 때문에 배로 접근 하기가 어렵다.







간단하게 웨스트바라이를 둘러본 다음에 우리가 향한 곳은 캄보디아의 재래시장. 그 나라를 알려면 제일 먼저 시장으로 가라고 했던가. 현지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훔쳐보는 데는 시장만큼 적당한 곳도 없다.

시장의 입구. 밖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은데, 안으로 들어가면 꽤 큰 규모다.



캄보디아의 시장은 주로 아침 일찍 열려서 오전 중에 마감하는데, 그 이유는 날씨가 워낙 더워서 고기나 생선들이 금방 상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기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비싸다. 소고기는 냉장고에서 3~4일 숙성시켜야 맛이 더 좋은데, 냉장고가 없는 이 곳은 잡자마자 먹을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맛있을 수 밖에, 그래서 값도 돼지고기가 더 비싼 것이다.

채소 모양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생선 파는 곳. 보기에도 그리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냄새도 엄청 났다.



잠옷을 진열해 놓은 것이다. 이 곳에서 잠옷을 입고 자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좀 사는 집들이다. 그래서 잠옷을 집에서 입지 않고 밖에 나다닐 때 입고 다니기도 한다. 우리집은 잠옷을 입을 만큼 부자라는 거지...



외국에 나가면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을 만나면 무지 반갑다. 우리나라 부탄가스 통이다. 이곳 사람들은 빈 통에 다시 가스를 채워서 쓴다고 한다.



고기 파는 곳. 보기에는 그리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 곳 돼지고기는 꽤 맛있다. 냉장시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그 날 잡아서 그 날 먹기 때문이라고.





시장구경을 뒤로 하고,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톤레삽호수는 세계에서는 두번째,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다음으로 큰 호수이며, 동양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다. 캄보디아 국토의 15%를차지하고 있으며, 건기 때는 2,500㎢, 우기에는  4배 이상 불어나 12,000㎢나 된다. 거의 바다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수평선도 보이고...--;;

버스로 이동 중에 본 산. 무슨 무스 산이라고 했었는데..우리나라로 치자면 낮은 구릉일 뿐이지만, 평야지대인 이곳에서는 이게 그나마 높은 산에 속한다고...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길



여기에도 도둑고양이는 있다. 그런데 빼싹 마른게 너무 안쓰러웠다.



배에 승선 한 후...





운전사 말고 배에는 아이들이 한 명씩 더 탄다. 손님들이 배를 타고 내릴 때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노를 이용해 배와 배사이의 간격을 유지하기도 하고. 덩치가 작아서 6~7살로 보이지만 사실 10살이 넘은 아이란다.





가이드 曰, 이렇게 일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tip으로 1달러씩을 주지만, 그렇지 않고 구걸하는 아이들에게는 tip을 주지 말란다. 관광객들은 불쌍한 마음에 쉽게 쉽게 주지만, 바로 그 1달러가 캄보디아의 미래를 망치게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구걸해서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을 알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지 않고 구걸만 하러 다니고, 결국은 캄보디아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과 된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인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간혹 아이들이 1달러, 1달러 하면서 구걸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구걸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일부가 그런거란다. 그러고보니, 캄보디아는 최빈국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을 향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편은 아니었다. 자그마한 팔찌나, 앙코르와트엽서 같은 것들을 들고다니며 사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그건 엄연히 장사니까...

우리가 탄 것과 같은 배. 관광객들은 이런 배를 타고 톤레삽 호수를 둘러본다.



톤레삽 호수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호수는 아니다. 황토색 누런 물이 일견 더러워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황허처럼 황토가 섞인 강인 메콩캉이 유입되어서 그렇지, 사실 굉장히 깨끗한 호수이다.



이곳에는 수상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배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아낙들.



배에 가득 든 통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이게 어딜 봐서 호수냐구요...바다지..
이 호수를 계속 따라가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할 수 있다.












호숫물로 머리감는 아가씨



호숫물로 쌀 씻는 아줌마. 이들에게 호수는 삶의 터전이자, 풍부한 식량창고이다.







대야를 배처럼 타고 노는 아이들.



이들에게 호수는 놀이터이다.



잠시 휴식을 위해 선상카페에 들렀다. 선상카페가 있는 배로 갈아타는 중.



선상카페에서 바라본 수상마을











캄보디아 국기를 펼쳐 보이는 태영이.



카페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했다. 태영이가 들고 있는 것은 앙코르맥주. 이곳은 맥주 이름도 앙코르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관공서이다. 수상마을에도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병원, 관공서, 슈퍼 등등...



배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가는 길. 사진에 찍힌 뒷모습의 아가씨는 우리랑 같이 여행을 다닌 일행 중 한 명. 어머니랑 같이 왔는데 현재 미국에서 살며 미술관 큐레이터라고 한다. 26살인데 결혼했으며 남편은 변호사라더군. 어머니는 한국에서 사는데, 내가 보기에는 교수처럼 보였다. 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관광하는 옷차림이 상당히 독특해서, 매번 숙소에서 나올 때 마다 '이 아가씨가 오늘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가 항상 태영이와 나의 화젯거리였다.-_-;;;



선착장에서 만난 현지민들. 트럭 가득 사람들이 타고 있다. 트럭은 현지 주민들의 중요한 이동수단으로 돈을 내고 버스처럼 타고 다닌다. 그런데 요금을 내는 방법이 독특해서 일정 금액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트럭에 탄 사람 수만큼 요금을 1/N하는 방식이라 보통 트럭 한 대에 수십명이 타고 가는 모습을 꽤 자주 봤다.

차에는 번호판도 달려 있지 않은데, 수도 프놈펜에서는 단속을 하지만 이곳 씨엠립까지는 법의 구속력이 약해서 씨엠립에는 번호판 없는 일제차와 오토바이들이 수두룩하다.



톤레삽호수 관광을 마치고, 한국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 씨엠립에는 한국식당들이 꽤 많은데, 어딜 가나 제나라 음식만 찾는 한국인 답기도 하고, 이 먼 타지까지 나와 돈을 버는 동포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여러가지 마음이 들었다.

이곳 한국관의 주인할머니는 십수여년전에 캄보디아로 오신 분이란다.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우는 '와트마이'  '새로 지은 사원'이라는 이름의 와트마이 사원에는 일명 '킬링필드' 때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킬링필드'하면 폴 포트라는 독재자와 그가 이끈 크메르루즈군들이 공산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200만명이라는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1969~73년에 아메리카가 먼저 시작했는데, 이걸 편의상 제1기 킬링필드라고 하면, 1975~79년 크메르 루주 집권기에 발생한 학살은 제2기 킬링필드에 해당한다.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이렇게 10년 동안 서로 다른 두 집단이 두번에 걸쳐 자행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왜 미군이 자행한 학살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자세한 이유는 내가 위의 내용을 발췌한 '킬링필드,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는 글의 전문으로 대신한다.

유골이 안치된 곳






새해를 맞아 사원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부처는 그 나라 사람들을 닮는다고 했던가. 부처의 모습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캄보디아 인을 본따 만들었겠지.



와트마이를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지뢰박물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규모는 작았지만, 30년 내전을 겪은 캄보디아의 아픈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세계 지뢰 매장량의 1/3이 캄보디아 산악지대에 있다고 한다. 현재 대도시주변은 지뢰가 많이 제거되었지만, 우기 때 비가 많이 오면 산악지대에서 흘러나온 지뢰로 인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뢰박물관 입구.



대인지뢰와 전차지뢰들. 그리고 이틀내내 우리랑 함께 다닌 가이드.



가이드는 27살의 아가씨였는데, 2년전에 이곳에 왔다가 반해서 아예 눌러 앉아 가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보기드문 여성가이드로서, 굉장히 성실했으며, 캄보디아를  여행 온 관광객들에게 하나라도 더 캄보디아에 대해서 알려주고자 성심성의껏 가이드를 했다. 캄보디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이에 비해 베트남에서 봤던 가이드는 정말....최악이었다. 패키지 여행의 경우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이 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모은 지뢰들.



박물관 내부.



지뢰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진







박물관 내부 전경.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규모였지만, 몇 몇 외국인들이 방문해서 열심히 둘러보고 있었다.





이 곳에서 만난 새끼 원숭이. 어찌나 귀엽던지..









박물관을 나오는 길에 본 아이. 지뢰때문인지 팔 하나가 없다.
누가 저 어린 아이의 팔을 앗아간 것일까. 그 민망스러움에 차마 정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지뢰박물관을 끝으로 캄보디아에서의 모든 관광일정은 끝났다. 이제 베트남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입국장이 여인숙이면 출국장은 호텔급이다.

출국장 내부와 면세점 풍경




밖에서 바라본 출국장.





베트남까지 타고 갈 비행기. 정말 작아서 좀 불안했지만, 그나마 최근에 프로펠러 비행기에서 제트기로 바뀐거란다.







캄보디아 국제공항. 이틀전에 이곳을 통해 입국할 때만 해도  낯설기 그지 없던 나라였는데, 단 이틀만에 왠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내가 처음으로 가본 외국이니, 앞으로 어디를 가던 평생 기억에 남겠지.

찬란한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국의 힘으로 그 유적을 보존하고 가꿀 수 없는 나라. 휴지 하나, 나무 젓가락 하나조차 만들 수가 없어서 외국에서 수입해와야하고, 긴 내전과 민간인 학살로 인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15세 이하인 나라. 과연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오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유적지에 나와 엽서나 팔찌등을 팔아 집안 살림에 보태는 아이들이 컸을 때는 지금보다야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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