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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15~20) 베트남 ① 하노이_바딘광장 주변 본문

일상탈출/2005신혼여행

(05-04-15~20) 베트남 ① 하노이_바딘광장 주변

정미자씨 2005. 5. 20. 14:37
4월 17일 저녁 6시 반, 캄보디아 씨엠립을 떠나 약 2시간 비행 후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캄보디아에 있다가 베트남에 오니 비행기가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았다. 캄보디아에 단 이틀 머물렀을 뿐인데 왠지 도시에 온 촌뜨기가 된 느낌이었다.

하노이 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만하다.





입국심사 중. 우리처럼 관광온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한 일은 늦은 저녁식사. 식사메뉴는 삼겹살-_-;;;;;. 밤 11시경에 삼겹살이라니....내참 월척이 없어서...

식당 근처에 있던 호수. 하노이에는 도시 곳곳에 호수와 공원이 있어서,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역할을 한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보니 베트남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늦은 밤, 도시를 청소하는 청소부아저씨. 식사 후 버스를 기다리며 몰래 한 장 찍었다.



오늘 우리가 머물 호텔의 로비





객실 내부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도시 전체에 안개가 자욱했다. 하노이의 날씨는 우리나라 삼한사온처럼 3일정도 계속 맑으면 그 다음 4일 정도는 계속 흐린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막 흐린 날씨가 시작됐을 때였다.





오전 중에는 시내관광에 나섰다. 원래는 호찌민 능묘와 호치민 박물관을 둘러보는 게 가장 큰 일정이었는데, 월요일에는 개방을 안한단다. 씨바..그러면 미리 공지를 했어야지....정말 속상했다. 인솔자에게 투덜거리자, 여행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다시 확인해봤지만 그런 말은 없었다. --+ 호찌민 능묘와 박물관 정말 보고 싶었는데.........

여하튼, 기분전환하고...

하노이는 천년 이상 베트남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유래깊은 도시로 현재 인구는 3백 5십만 정도. 도시 외각으로 홍강 Song Hong(Red River)이 흐르고 있는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구부러진 강 안쪽이라는 의미에서 하노이(Ha Noi; 河內)란 지명이 유래했다.

하노이에서 처음 둘러본 곳은 바딘 광장. 1945년 9월2일에 호치민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선언을 낭독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광장을 끼고 양옆으로 호치민 능묘와 국회의사당이 있다.



왼쪽은 호찌민 능묘




오른쪽은 국회의사당



베트남은 혁명가 호찌민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이다. 세계최강국인 중국과 일본, 프랑스, 미국의 침략과 간섭을 차례로 물리치고 독립을 지켜낸 베트남 민족의 투쟁 한 가운데에는 항상 호찌민이 있었다.  

민족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호찌민은 1969년 9월2일 오전 9시47분, 자신이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던 바로 그날,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옛 소련 전문가들에 의해 그의 유해는 방부 처리되어 안치된다.

호찌민은 유언을 자주 고쳤지만, 어느 것에나 화장을 해달라는 조항은 꼭 들어 있었다.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던 레닌이나 화장해서 조국 산하에 뿌려달라고 했던 마오쩌둥, 그리고 유해를 북부와 남부, 중부에 고루 나누어 뿌려달라고 했던 호찌민. 이들의 유해는 모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라로 만들어져 유리관에 안치된 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호찌민 능묘



호찌민이 죽은 지 올해로 36년, 그러나 호아저씨는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 깊이 여전히 남아 있다.

능묘 옆의 거대한 플랭카드.

“우리의 위대한 호찌민 주석은 우리의 사업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Vietnam Muon Nam(베트남 만세)! HoChiMinh Muon Nam(호찌민 만세)!”



다낭에서 운반해온 대리석으로 지은 이곳에 호치민의 유해가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다. 사망 직후 보존처리된 호찌민의 시신은 베트남 전쟁 말기에는 미국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 은닉시켜 놓기도 했다고 한다. 능묘는 1973년부터 75년 사이에 건설되어 75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능묘는 하노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호 아저씨’를 보기 위한 현지인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 묘소에 들어갈 때에는 반 바지나 소매없는 옷을 입어서는 안되며 카메라나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어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호찌민 능묘 맞은 편에 있는 건물은 국회의사당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 비하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바딘 광장의 의사당을 웅장한 규모로 다시 지으려는 계획안의 결재를 거부한 도모이 수상이 남긴 말이다.

"집의 크기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서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무슨 의논을 하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잔디밭을 가꾸는 사람들.



바딘광장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호찌민 관저.

이곳은 옛날 프랑스 총독 관저. 호치민이 하노이 해방 후인 1954년부터 2년동안 살았으나, 그 뒤에는 이 건물에 사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정원사나 하인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총독관저 앞의 분수



대통령 궁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호찌민 관저가 나온다.

호찌민 관저로 가는 길



이곳은 호찌민이 1954년부터 58년까지 머물던 곳.



침실인듯...



식당 겸 응접실..



서재. 이곳 서재에는 호찌민이 즐겨 읽었다는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있다.



호찌민 하우스 옆에 있는 호수를 돌아가면 1958년 정부가 호찌민 하우스를 지어 주기 전까지 호찌민이 머물던 거처가 있다.

작은 정자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호숫가 나무 곁에 자라던 이상한 식물. 나무 새끼인가????-_-;



1층에는 탁 트인 공간에 응접실 있고 2층에는 자그마한 침실과 서재가 있었다.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할아버지 2분이 유심히 기념품을 고르고 있다.



호찌민 하우스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면 호찌민 능묘 바로 뒤편에 호찌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의 외관은 베트남을 상징하는 연꽃 모양으로 베트남에서 생산된 재료들만 사용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호찌민 능묘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역시 휴관일이라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다.ㅠ.ㅠ





베트남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참 많다.





호찌민 능묘 앞을 지키던 병사. 교대식을 하나보다.



우체통이 참 정겹게 생겼다.



호찌민 박물관 옆에는 자그마한 사원이 있는데 바로 못꼿사원이다. (一柱寺; One Pillar Pagoda). ‘못’은 하나, ‘꼿’은 기둥을 뜻하므로 기둥이 하나인 사원이라는 뜻이다. 1049년 리타이똥 황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원은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1954년에 보수되면서 시멘트가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됐다. 사원은 호안끼엠의 작은 거북이 탑 (Thap Rua)과 더불어 하노이의 상징적인 전설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리타이똥 황제가 아기를 안고 연꽃에 앉아있는 꽌암 Quan Am(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꿈에서 본 후에 시골 아가씨와 결혼해 득남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사원에 향불을 바치면 아들을 얻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향불을 올리고 있었다.





사원 앞에서 잠시 사진촬영을 하고 나오자 처음에 왔던 바딘광장 입구에 도착했다. 바딘 광장을 떠나 기 전 아쉬운 마음에 사진 몇 장 더 찍고...






시간이 여유가 있어 원래 예정에 없었던 문묘에 가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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